‘인터넷 윤리교육’보다 ‘철학하기’가 필요한 때-보안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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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기술된 그 유명한 정언명법이다. 이런 말 하나쯤 외워두면 하면 “철학” 을 좀 아는 사람으로 제법 잰 체 할 수 있다. 이런 폼 나는 말을 듣고 어떤 이들은 철학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논증은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옳은 것은 무엇인가 등등 끝도 없고 명징한 답도 없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고 묻고, 한 장도 읽어 나가기 어려운 철학서적을 읽으며 나의 사고(思考)는 깨지고 다시 뭉치고 확장된다.

철학은 그저 그런 관념의 유희나 박제화된 개념이 아니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고 당대의 지지받는 철학적 사조는 세계를 움직인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유의 노정 끝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인간생활의 영역에서 ‘창의’와 ‘혁신’이 돋아난다. 학문 영역으로의 철학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지만, 교양으로서의 철학은 때때로 유쾌하다. 좋은 강연이나 쉽게 풀어 쓴 철학 책 한권을 읽으면 머리 속을 깨끗하게 씻어낸 듯한 상쾌함 마저 느낀다.

먼저 아래의 글은 필자 개인적인 의견임을 분명히 하자. 누구나 ‘옳다는 것’이 무엇이고 ‘옳은 행동’과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으리라.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 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이다. 서양윤리학에 관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은 만학(萬學)의 비조(鼻祖)라고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윤리학(倫理學, ethics)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의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윤리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마땅히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것을 윤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 윤리적인가. 하는 질문에 관한 기준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옳고 그른 것”은 나누기 어렵다.

윤리학은 철학이다. 스스로 물으며 자신의 답을 찾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철학하기”다.

윤리학은 철학이다. 윤리학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받고 살았던 사상들이 숨어있다. 가치를 판단하는 주체가 정하는 ‘가치주관주의’와 각자가 가진 가치와 상관없이 불변하는 좋은 것이 있다는 “가치객관주의”는 그 힘의 극단적 쏠림에 따라 유대인학살, 노예제도, 인권유린, 남녀차별 등 지금은 부당하지만, 과거의 한 때는 정당했던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하게 한다. 또 서양철학사를 두 갈래로 나누라면 누구나 말하는 “공리주의와 “도덕적 의무론”.

모두가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추구한다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말로 유명한 영국 철학자 밴덤이 주창한 이른바 “공리주의” 그리고 그와 더불어 대립각을 세웠던 “결과”가 반드시 “옳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칸트의 “도덕적 의무론”은 상황에 따라 혹은 어떤 전제에 따라 힘을 얻기도 하고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우리는 이 위대한 철학자들의 생각 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리학은 철학이다. 철학은 답을 적어놓고 외우길 권하지 않는다. 타인이 원하는 답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알맞는 답을 찾도록 안내한다. 허망한 권위에 기대어 답을 찾아 헤매기를 권하지도 않는다. 오직 치열하게 스스로 묻고 답하길 원한다. 꼬리무는 사유의 여정 속에서 부족하지만 “최선의 답”을 찾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철학하기”다.

“인터넷윤리”를 알기 전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사고능력을 길러야..

정보보호교육을 하는 지인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보보호 교육을 하면서 ‘인터넷 윤리’시간을 보강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단지 몇 시간을 더 보강한다고 윤리의식이 고양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대뜸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터넷 윤리가 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정보화 사회 속에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행동양식을 알려 주는 것”이라 답했다. 간단히 한번 설명해 달라는 부탁에 짧게 인터넷 윤리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타당한 이야기지만, 듣다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학창시절 아침조회시간의 교장선생님 훈계같다.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 했다간 혼난다” 같은. 훈계가 지나치다 괜히 저항감만 불러 일으킬 것 같은 불길함은 왜 드는 걸까?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인터넷 윤리를 가르친다는 것엔 반대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속 깊은 윤리의 세계는 모른 채 분절된 인터넷 윤리만을 논한다는 건 세계사는 전혀 배우지 않고 한국사만 배우는 것과 같다. 한국사는 세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도 자신이 딛고 선 세계를 이해하고서야 더 커지고 성장하는 법이다. 인터넷 윤리교육 전에 진정으로 “사고(思考)하는 윤리”를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칸트의 말로 끝내겠다. 다음의 말처럼 청소년에게 향하는 윤리교육이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내 마음을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법칙이다.

SSS

이병관 bngkwn9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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